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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소개

유래/전설

100%

이서면

완주군 3읍 10면의 하나다. 본래 전주군 (1935년 10.1일 이후는 완주군)지역으로 옛 이성현의 서쪽이 되므로 이서면이라 하여 상회, 하회, 원동, 구사, 독정, 청복, 탑동, 남계, 신기, 대농, 반교, 갈동, 수청, 갈산, 지사, 용서, 영주, 산정, 이문, 모고, 운수, 명당, 원앙, 신지산, 신월, 두죽, 지산, 은교, 장동, 매암, 신제, 앵곡의 32개 동리를 관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페합에 따라 이남면의 상개, 하개, 기암, 화정, 신흥, 양동, 덕동, 옥정, 갈산, 신공, 신풍, 상리, 면학, 오공, 안신, 흑암, 상림, 신삼산, 금평, 신정, 어전, 대흥, 이성, 분토, 내정, 상금, 마산, 제내의 31개 동리와 김제군 금굴면의 재남, 상금, 하금의 각 일부와 같은 군, 모촌면의 신성리 일부와 같은 군 동면의 대장, 동화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원동, 남계, 반교, 용서, 이문, 인교, 상개, 갈산, 중리, 상림, 금평, 이성의 12개 리로 관할하다가 1935년10월1일 전주읍이 전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완주군에 편입되었다.

1982년 2월 15일 원동리가 전주시에 편입되고 1990년 8월 1일 상림리 중리가 역시 전주시로 편입되고 1990년 8월 1일 상림리 중리가 역시 전주시로 편입되고 1994. 12. 5일 김제군 용지면 금계리가 이서면을 편입되었다. 동쪽은 전주시, 남쪽은 구이면과 김제군 금구면, 서쪽은 김제군, 용지면, 북쪽은 전주시에 닿음.

금평리(金坪里)

본래 전주군 (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이남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금평리 신정리 어전리와 신풍리 대흥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 안의 으뜸 마을인 금평리의 이름을 따서 금평리라 하여 이서면에 편입됨.
신정(新亭)

부분명-새터, 태평동(太坪洞) 신정은 전에 새로 생긴 마을로 정자가 있었기에 그런 이름이 생겼으리라고 하고, 새터는 신정 서남쪽에 있는 새로 된 마을. 태평동은 본시 상림리에 속했었는데 자연 발생적인 이름이 아니라 명명된 이름.

어전(於田. 느랏골)

전주권쓰레기 소각장건설로 인하여 주민이 이주함에 따라 2002년 5월2일 행정구역에서 폐지.

원금평(元金坪. 새금골. 새금동)

이 마을 근처에서 사금(沙金)이 많이 나와 ‘사금→새금’이라 하며 금평은 금들의 한자 표기이다.

신풍(新豊里)

신풍은 자연명이 아니라 명명된 이름.

갈산리(葛山里)

본래 전주군 이남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갈산리 신흥리 양동리 덕동리와 옥정리 신정리 신풍리의 각 일부와 이서면의 신제리를 병합하여 갈산리라 해서 이서면에 편입됨.
옥정(玉亭. 玉井. 玉丁. 지기동)

지기동은 그곳에 옥녀직금혈이 있다는 풍수설과 관계된 명칭이라 한다.

덕동(德洞)

부분명-양동(良洞) 덕동의 ‘덕’은 ‘터’또는 ‘언덕’의 고어이니 ‘텃골’또는 ‘언덕진곳’의 뜻이다.

신흥(新興. 치릇)

치릇이 본 이름인데 우리 나라 지명 중 치릇은 옻나무가 많아 ‘칠곳’이라 한 것이 ㄹ밑에서 ‘칠옷’ 으로 발음되고 다시 ‘옷→읏’으로 변음된 곳이 많다. 신흥은 지어 붙인 이름.

원갈산(元葛山)

원갈산의 ‘원(元)’은 법정 이명과 구분하기 위하여 덧붙인 것이고, 갈산의 본 이름은 ‘갈뫼’인데 그것은 옆 산봉이 갈모처럼 생겨 일컫던 이름. 갈사리에는 이밖에 덕동과 치릇 사이에 있던 신제(新堤)에 2세대가 살았고, 치릇 동쪽에 있던 독골에도 인가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이성리(伊城里)

본래 이성현 지역인데 고려 때 전주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페합에 따라 이성리 분토리 내정리 상금리 마산리와 김제군 동면의 대장리 동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성리라 해서 이서면에 편입됨.
원이성(元伊城)

부분명-걸치기, 내정리, 신성리, 분토리, 불가절, 사부뜸 원이성은 옛날 이성현의 치소(治所)다. 걸치기는 내의 양쪽에 걸쳐있는 마을 내정리 즉 황새골에는 황새 가 많이 서식했었다고 하고, 송강다리에는 예전에 다리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하나 ‘다리’는 또 들 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분토골은 이성 동남쪽에 있던 마을로 분터 즉 흰 백토가 났다고 보아야 한다. 불가절은 이성 동쪽 마을. 사부뜸은 황새골 남쪽에 있는 마을.

대문안(大門安. 上金里)

부분명-남텃골 대문안은 이성현의 치소로 들어가는 대문의 안쪽 마을이란 뜻이고, 남텃골은 대문안 북쪽 마을이다.

마산(馬山)

부분명-쑥고개(숫고개) 마산은 앞 산에 갈마음수혈이 있어 ‘말산→마산’이라 한다. 쑥고개는 마산 남쪽에 있는 마을로 숙호 (宿虎)의 명당이 있어 ‘숙호개→쑥고개’일 것이라고 한다.

상개리(上開里)

본래 전주군 이남면 지역을 1914년 상개리 기암리 화정리 하개리 일부와 이서면의 용서리 장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개리라 해서 이서면에 편입됨.
삼태(三台洞. 三兌洞. 花亭)

부분명-여차리(如此里) 삼태동은 마을 뒤에 삼태봉이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한다. ‘삼태’는 삼태성이란 말이다. 여차리는 개태 동 북쪽에 있는 마을.

개태(開台. 開泰)

상개리의 으뜸 마을로 이의 이름도 윗개태(上開)에서 취했다.

오목(梧木)

마을 앞의 내가 이 마을을 오목하게 돌아 흘러 이루어진 이름이라 한다. 하개는 아랫개태의 뜻.

후농(厚生農園)

부분명-돌치 후생농원은 6.25때 피난민으로 이루어진 마을. 돌꼭지는 돌아가는 곳의 뜻.

신마산

이성리 마산이 전주권 광역쓰레기 매립지로 지정됨에 따라 행정구역에서 폐지되어 상개리에 신마산이라 개명함.

하늘가APT

3동 신축, 2005년 9월 새로이 행정구역으로 신설

용서리(龍棲里)

본래 전주군 이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용서리 지사리 반교리 이루와 이남면의 하개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서리라 하고 이서면에 편입함.
원용서(元龍棲. 용숫골. 龍水洞)

부근에 용소가 있어 생긴 이름.

해교(蟹橋, 게다리, 기다리)

게다리는 마을 지형이 게다리와 같다 든가 마을에 게가 엎드린 복해혈이 있어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하 나 ‘다리’는 ‘들’의 고어이니 ‘게들’이라는 말이다. ‘지사울’의 ‘울’은 ‘골’이란 말이니 지사골이 본 이름이며, ‘지사’는 기와의 고어 ‘디새.지새’의 변음이므로 ‘기와골’이라는 말이다.

남양APT

2002. 5. 2일 이서면 용서리에 남양APT 7동이 신축되어 새로이 행정구역으로 신설

은교리(銀橋里)

본래 완주군 이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페합에 따라 은교리 원앙리 신지산리 신월리 두죽리 지산리 장동리 앵곡리를 병합하여 은교리라 하고 이서면에 편입함.
원은교(元銀橋. 은다리. 인다 리)

부분명-애통리 은다리의 ‘다리’는 고어 ‘들’이란 말로 보아야 한다. 애통이는 ‘쑥골→쑥동→애통’이 아닐까 한다.

장동(長洞)

부분명-원앙리(元央里) 장동은 신월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 이고 원앙리는 원상산 밑의 마을.

신월(新月里. 시앙골)

부분명-두죽리(豆粥里. 밧죽이) 신월은 지형이 초생달 같아서, 또는 반월(半月) 명당이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하고, 두죽리는 신월리 남쪽 에 있는 마을로 ‘밧죽이’가 본 이름인 듯 하다.

앵곡(鶯谷)

예전 삼례 도찰방에 딸린 앵곡역이 있었다. 유지앵소혈이 있다고 한다.

지산(芝山)

부분명-기암(崎岩. 어기재), 새터 지산은 근처의 산세가 갈지(之)자 형으로 생겼다 하고, 기암은 상개리 개태 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네 뒤 에 기이한 바위가 있다. 새터는 신지산 서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

신지산(新芝山)

산월 동북쪽 지산리 기슭에 새로 생겼음.

이문리(伊門里)

본래 전주군 이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이문리 영주리 산정리 모고지 운수리 명당리 해교리 일부와 김제군 금굴면의 상금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문리라 하여 이서면에 편입함.
모고지(慕古池)

부분명-운수동(雲水洞. 안터) 모고지는 앞에 연못이 있어 못이 있는 곳의 말인 ‘못곶이→못고지’고, 운수동은 모고지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원이문(元伊門. 伊門洞)

이문리의 으뜸 마을이므로 ‘원(元)’을 덧붙였으니 원명은 이문리고, 옛날 이성현의 치소인 이성리에 들어가는 이문(里門)임.

산정(山亭里)

부분명-동산리, 싸오래 산정리에는 뒷산에 정자나무가 있었다. 동산리는 산정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동산에 위치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 싸오래는 산정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

부영APT

1999. 3월 이서면 이문리에 2동의 아파트를 건축하여 행정구역 신설

남계리(南溪里)

본래 전주군 이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남계리 초남리 신기리 대농리 반교리 탑동리의 각 일부와 김제군 금굴면의 제남리 상금리 하금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계리라 하여 이서면에 편입함.
대농(大農. 쇠평이. 金坪里)

쇠평이는 마을 주위에 사금이 많이나 생긴 이름.

초남(草南. 초내미, 初南里)

남계리의 으뜸 마을이다.

신기(新基. 새터)

신기는 초남리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 재남리는 김제군 용진읍 남정리 재남과 인접해 있다. 바우배기에 는 바위가 많이 박혔다.

반교리(盤橋里)

본래 전주 이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반교리 갈동리 수청리 갈산리 일부와 이남면의 옥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반교리라 하여 이서면에 편입함.
갈동(葛洞. 시양골)

갈동을 시양골이라고도 하는데 시양골은 시향(時享)을 지내는 골짜기라는 말이다.

수청(水靑. 水淸)

물이 맑아 생긴 이름이라 한다.

원반교(元盤橋. 반석다리. 독다리)

반석으로 놓은 다리가 있다.

홍개(洪開, 되미, 되메)

홍개를 또 되미라고 하는데 되미는 마을 뒷산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정농1리(定弄農園)

6.25 사변 후 피난민이 정착한 곳.

정농2리

금계리(金溪里)

본래 김제군 금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용지면 금평리에 편입되었는데 1994년 12월 26일 금평리 중에서 상금평과 하금평을 떼어 금계리라 하여 완주군 이서면에 편입함.
상금(上金坪. 윗쇠평이)

쇠평이 서쪽 윗 부분이 되는 곳. 쇠평이는 사금이 나서 쇠평이라 하였다 한다.

하금(下金坪. 아랫쇠평이)

쇠평이 동쪽 낮은 부분이 되므로 생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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